통일신라 전쟁과 군인, 신라시대 화랑 꼼꼼정리 / 김유신 일화
서서히 통일신라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야기로 풀어내보려하는데 읽으시는분들이 힘들어하시진 않으실지 걱정도됩니다.
학업과 과제를 위해 오신분들은 천천히 읽어보셔서 정보 찾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그속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국민성을 알수있다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매우 힘든 시기에 놓여있다 생각듭니다. 역사에서는 난세에는 영웅이 나와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줍니다. 한민족이 분열되어서 서로 각자 다른 이념속에서, 사상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기만하는 이사회에 웃는 얼굴과 화해를 하루 빨리 보고싶습니다.
오늘은 신라가 3나라를 통일하기 직전의 상황을 적어보겠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망하자 당나라는 신라를 넘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는 어려운 입장에 놓였습니다. 이제 신라는 다시 당나라를 몰아 내야 했고, 고구려 땅에서는 옛고구려 사람들이, 백제 땅에서는 옛백제 사람들이 신라 사람들과 힘을 합쳐 당나라 군대와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675년 매소성전투 (경기도 연천)에서 벌인 싸움에서 당나라 군대 20만을 무찌르고, 기벌포(장항)전투에서는 당나라 해군을 크게 이 졌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비록 신라에게 패했지만, 그렇다고 당나라 편을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한반도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은 당나라 군대를 세 나라 백성들이 힘을 합처 대동강 이남 지역에서 완진히 몰아 냈습니다.
통일신라 전쟁과 군인 러브스토리
전쟁은 왕이나 귀족들이 많은 노예와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 백성들에게는 피하고싶은 일이었습니다.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백성들은 항상 교대로 군대에 가서 국경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생터로 끌려나가 직접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진쟁으로 힘든 생활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이 하얀벚꽃처럼 몽실몽실 피어났습니다.
밤나무가 많아 율리라고 하는 신라 마을에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홀아버지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마음씨가 곱고 얼굴도 예뻐서 동네 총각들이 모두 그 아가씨를 좋아했지만 예쁜아가씨에게 말을 붙이지는 못하고만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가씨에게 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나라에서 아프고 늙은 아버지에게 3년 동안 국경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늙은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내가 어찌 군대에 간다는 말이냐? 하지만 거부하게되면 나라에서는 큰벌이 있겠지 하면서 말이죠 효성이 지극한 아가씨는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지금은 여자도 지원하면 갈수있지만 저당시만 하더라도 여자가 대신 군대에 가는것은 꿈도 못꿨습니다. 아가씨의 아버 지는 그만 몸저눕고 말았고, 이 소식을 듣고 이 동네에 사는 마음씨 착한 가실이라는 총각이 아가씨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시대에도 로맨스 남이 있었네요
가실은 용기를 내어 아가씨에게 말했습니다.
"보잘것 없는 저이지만 , 사나이 대장부로서 용기 하나만은 있습니다 아가씨 아버님을 대신하여 제가 군대에 가겠습니다."
아가씨는 매우 고마워하며, 곧장 집으로 가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는 가실을 불러 말했습니다.
"자네가 이 늙은이를 대신해 준다니 정말 고맙네. 그리고 만약 싫지 않다면 내 딸을 아내로 삼았으면 좋겠네."
가실은 크게 고마워하며 절을 했습니다. 가실이 군대에 가야 할 시간이 촉박하여 가실과 아가씨는 혼례(결혼식)를 올리
지 못하고, 약속의 징표로 거울을 둘로 쪼개어 하나씩 가졌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돌아오는날 결혼하기로 굳게 약속하고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작별을 했습니다. 가실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가실은 원래 돌아오기로 한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기다리다 시친 아버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6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죽은 것이 돌림없다. 그러니 더 나이 들기 전에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도록 해라."
"지난 날 아버지를 편안하게 해 드리기 위해 가실은 목숨을 걸고 대신 군대에 갔는데, 제가 어찌 약속을 어기겠습니까? 다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아가씨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가씨 몰래 이웃에 사는 다른 청년과 혼인 약속 을 하고 혼례를 치를 날짜까지 잡았습니다.
혼례식 전날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아가씨는 가실과 나누어 가진 반쪽거울을 보며 밤새 울었습니다.
그 날 새벽,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열어 보니, 다 해어진 누더기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차림새가 몸시 너립고 초라해서 아가씨는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가 쪼개진 거울 반쪽을 보여 주자 그 때시야 그가 가실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두 사람은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얼싸안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아가씨의 아비지는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좋은 날을 잡아서 아가씨를 결혼시켜 주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세 나라가 전쟁을 하던 시기에, 많은 남자들이 군대에 갔습니다. 전쟁이 오랫동안 계속 될 때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은 남자도 군대에 가야 했습니다.
군대에 있는 기간은 3년이지만,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이 끝나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실도 6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것 입니다.
이처럼 군대에 가면 돌아오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남성들은 군대에 가는 것을 무척 누려워했습니다. 전쟁에 나가 죽거나 다치면 농사지을 사람이 줄기 때문에 집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형편이 나빠졌습니다. 물론 전 쟁에 나가 큰 공을 세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많은 재물을 상으로 받고, 신분도 올라갔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가난해진 농민들은 새로운 농사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는 농사지을 땅이 더 늘어나 예전보다 잘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쟁을 치르면서 일반 백성들 가운데는 더 못살게 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전보다 더 잘 사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느낀점은 이번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한번 뒤집히고나면 이득을 챙기는 사람과 그와는 반대로 더 못살게되는 사람이 나올거라고 분명 생각합니다.
드높은 명예, 신라시대 화랑
신라는 세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서 훌륭한 인재를 많이 키우려고 애썼는데 그 중에서 고구려, 백제와 전쟁을 할 때 앞장 서서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화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유신도 화랑 이었으며 김유신의 아들인 원술도 화랑이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를 몰아 내는 전투에 나간 원술은 수십 일 동안 밀고 밀 리는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치열하게 싸우다가 대장인 효천 장군의 가슴에 적의 화살이 꽂히면서 싸움의 상황이 신라군에게 불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당나라 군사들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해 왔습니다. 이 싸움에서 거의 모든 장수들이 전사하고, 남은 사람은 원술과 병사 몇십 명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원술도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적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려고 했습니다.
이 때 한 부하가 원술의 말고삐를 잡고 말렸습니다.
"지금 적진으로 뛰어드는 것은 헛된 죽음일 뿐입니다. 지금은 참으시고 뒷날을 기약하시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생
각되옵니다."
원술은 그럴 수 없다며 적진을 향해 뛰어들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부하들의 간곡한 만류에 어쩔 수 없이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후퇴하여 돌아온 아들을 본 김유신은 크게 꾸짖었습니다.
"싸움에 나가 적과 끝까지 싸우지 않고 도망처 오다니! 그런 놈이 어찌 화랑이냐! 너는 이제부터 내 아들이 아니다."
김유신은 원술을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원술이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장군께서 너는 자식이 아니라 하셨으니, 나도 역시 마찬가지다. 집 안으로 한 발짝도 들이지 말아라."
원술은 몹시 슬퍼하며 발길을 돌려 태백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뒤 당나라의 공격이 갈수록 심해지자, 원술은 산에서 내려와 신라 조정에 나아갔습니다.
"큰 죄를 짓고 살아 돌아온 원술입니다. 이번 전쟁에 참가하여 지난 날의 죄를 씻고 깨끗이 죽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원술의 용기를 장하게 여긴 조정에서는 흔쾌히 허락했고 원술은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열심히 싸웠습니다. 마침내 신라 병사들은 당나라 군사를 완전히 몰아 냈습니다. 원술이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자, 나라에서 벼슬을 내려주려고 했지만, 원술은 오로지 어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할 뿐 벼슬은 거절했습니다.
여기서 신라의 화랑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합시다.
신라 진흥왕 때 15세쯤 되는 진골 귀족의 아들을 화랑으로 뽑고, 그밑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모아 낭도라고 불렀습니다. 주로 경주에 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화랑과 낭도의 수는 적게는 300명이었으며,
많을 때는 1500명이 넘었습니다.
주진모 조인성 주연의 쌍화점도 바로 화랑이야기인데요
화랑과 낭도는 평소에는 같이 모여 공부도 하고, 조국의 산과 강을 찾 아다니면서 무술을 익히고 몸과 마음을 닦았습니다. 왕과 귀족들은 화랑에게 여러 가지 도움과 혜택을 내려 주었습니다.
화랑에게는 원광 스님이 만든 '세속오계' 라고 하는 다섯 가지 지켜야 할 덕목이 있었습니다. 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겨야 한다는 '사군 이충. 어버이께 효도를 해야 한다는 '사친 이효' 믿음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교우 이신', 전쟁터에 나가서는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는 '임전 무퇴',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살생 유택' 입니다. |
화랑은 국가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인재들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신라의 중요한 관리나 장수가 뇌어, 나라에 큰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었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에는 조선 시대처럼 시험을 쳐서 관리를 뽑는 과거 제도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골 귀족의 아들들을 모아 공부와 무술을 익히게 했습니다. 화랑들은 끊임없이 훈련하고 공부에 힘써서 나라에 꼭 필요한 관리와 충신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신라는 화랑을 중심으로 많은 인재를 길렸고, 실제로 세 나라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화랑들이 큰 역 할을했습니다.
화랑은 멋있어보이지만 왕권강화의 목적이있습니다. 서로 끈끈하게 왕을 지키는것처럼보이지만 왕족과 귀족사이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로서, 어렸을때부터 서로가 피를나눈 형제보다 더욱더 강한의리로 지켜지고 이어졌기때문에 신라왕족에 힘을 실어주고 내부를 결속하는 순기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