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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를 끌어들인 김춘추의 남북국시대 / 한국사정리Study/역사 2020. 4. 26. 18:15반응형
이제부터 한국사정리노트를 한번 만들어 보려고해요 ^.^
요약집처럼 딱딱하게 적기보다는 이야기처럼 술술 풀어나가는 느낌으로적어보려구요
간만에 역사정리를 하려고 보니 어디부터 해야할지몰라서 일단은 남북국시대부터 쭉 한번 해보려합니다.
이 글이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바람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왜 서로 싸웠는지알아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한 핏줄로 맺어진 같은 민족입니다. 그러나 3개나라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전쟁을 일으켜 서로 싸웠습니다. 서로 감정이 나쁘거나 원수 사이여서 긴 시간동안 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세 나라가 목숨을 결고 전쟁을 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요.거슬러 올라가 국가가 처음 생기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에도 전쟁은 분명 있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다른 집단을 공격하여 식량이나 귀중한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죽인 다음 집을 불태우는 일이 흔히 있었습니다. 그 증거로 불에 탄 채 발견되는 청동기 시대의 집터를 통해서 우리는 그 무렵에 전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처음 일어선 시기에는 사람과 재물을 빼앗기 위 해 자주 전쟁을 했었고, 귀족들은 전쟁에서 잡힌 포로들을 노예로 삼으며 금은 보화나 비싸고 귀한 물건들을 차지하였으며, 나라의 영토도 점점 넓혀갔습니다.이렇듯 3나라가 일어선 초기에는 왕이 중심이되고 귀족들이 힘을 합쳐 전쟁을 치렀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과정 속에서 왕과 나라의 힘이 점차 강해졌습니다. 왕권강화가 상당히 이루어 졌음을 알수있습니다.
세 나라 가운데 가장 일찍 발전한 백제는 중국과 활발히 무역 활동을 하며 영토를 넓혀 나갔습니다. 백제를 이어서 고구려의 힘도 무시하기못할정도로 강했는데 위에 있는 중국도 무서워 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광개토 대왕(19대 왕으로 고구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여 전성기를 이루었다.)과 장수왕 때에는 상당히넓은 영토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때가 고구려의 전성기라고 할수있습니다.
한편 고구려가 북쪽에서 중국의 무자비한 침략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밑에 있는 백제와 신라는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 나라는 점차 비슷한 힘을 가 진 국가로 발전하였습니다.현재 서울이 있는 한강 유역은 지리적으로 우리 나라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 나라도 이 곳을 서로 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고구려만 서울을 차지한것이아니라 각 나라의 전성기일때 백제, 고구려, 신라의 순서로 한강을 한 번씩 차지하였습니다.
이렇게 세 나라가 서로 영토를 넓히려고 애쓴 이유는 농업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삼국 시대 이전부터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이 시대에는 농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 얻는 곡식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농사짓는 기술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던때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수록 많은 곡식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과 귀족들은 전쟁 포로들을 잡아와 농사일을 시켰습니다. 세 나라의 기틀이 잡히면서 점차 농사짓는 기술도 발전했습니다.농사 기술이 발달하자 이제는 농사지을 땅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었고, 땅이 넓어지면 백성들은 많은 농작물을 거두어들일 수 있고, 나라에서는 그 만큼 많은 세금을 백성들로부터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과 귀족들은 전쟁으로 넓힌 영토에서 거둔 곡식으로 더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약속이나 한것처럼 전쟁은 주로 농사를 안짓는 계절에 일어났습니다. 한참 곡식이 추수를 하는 계절인 여름에 전쟁을 일으켜 농사를 망치면 서로 굶주리게 되므로 농사짓는 철은 되도록 피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세 나라가 전쟁을 한 것은 농업을 기반으로 해서 좀 더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 였습니다.당나라의 힘을 끌어들인 김춘추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세 나라는 계속해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고구려가 힘이 세지자, 백제와 신라는 힘을 합쳐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백제는 한강 하류를, 신라는 한강 상류 지역을 나누어 가졌습니다.그 무렵 고구려는 안으로 왕위를 둘러싼 다툼이 잦았고, 밖으로는 서북 지역에 새로 나타난 돌궐의 위협을 막느라 한강 유역에 신경쓸 여유가 없 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백제 몰래 신라와 약속하여 한강 유역을 안정시킨 다음, 서북쪽에서 일어난 돌궐의 위협을 막는 데 힘을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한강을 신라가 차지하고 앞으로는 두 나라가 전쟁을 하지 않
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이에 신라는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하류 지역까지 차지하였습니다. 뒤통수를 친것이죠신라의 배신에 분노한 백제 성왕은 가야군과 1천 명의 왜군까지 불러들여 신라를 공격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고구려에 맞서 싸웠있던 백제와 신라의 동맹 관계는 깨졌습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된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크게 패한 성왕은 전사하고, 백제 편에 서서 신라를 공격했던 대가야도 그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가야가 신라의 영토로 되면서 신 라는 한반도 중앙과 남쪽 지역에서 큰 힘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신라의 힘이 계속 커지자, 이번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힘을 합하여 신라를 공격하였습니다. 의자왕은 군사를 일으켜 신라 서쪽에 있는 40개의성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와 함께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로 가는 신라 사람들의 바닷길을 막아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대야성 싸움에서도 백제가 신라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그 무렵 신라 선덕 여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김춘추는 대 야성 싸움에서 성주였던 사위와 딸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백제의 기세를 꺾기 위하여, 신라는 다시 고구려와 손을 잡기로 하였습니다. 김춘추는 선덕 여왕에게 나아가 말하였습니다. "제가 가서 고구려에 군사를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선덕 여왕은 즉시 오케이 했고, 김춘추는 곧바로 고구려로 떠났습니다.김춘추를 맞이한 고구려 보장왕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때 한 신하가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신라 사신은 보통 사람이 아니옵니다. 분명 우리의 사정을 살피러 온 첩자(스파이)일 것이니, 왕께서는 저 자를 죽이는 것이 좋습니다."
보장왕은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김춘추에게 말하였습니다.
"마목령과 죽령 지역은 본래 우리 땅인데 지금 너희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다.
그 땅을 지금 즉시 돌려 주지 않으면 너는 신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김춘추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문제는 일개 신하인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이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난 보장왕은 김춘추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고,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오히려 감옥에 갇힌 김춘추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김춘추는 가지고 있던 보물을 감옥지키는 교도관에게 주면서 감옥에서 나갈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일단 왕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거짓말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쉬운 일을 왜 어렵게 생각하십니까?"
옥지기의 말을 들은 김춘추는 바로 깨달았습니다.
곧장 김춘추는 다시 보장왕을 만나 교도관이 말한대로
"그 곳은 원래 고구려 땅이니 제가 신라에 돌아가면 왕께 말씀드려 꼭
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보장왕은 아주 기뻐하며 김춘추를 신라로 돌려보냈습니다.오늘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하루에 하나씩 역사관련 포스팅을 해보려 하는데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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