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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조 이성계 아들 권력다툼으로 생긴 함흥차사 유례
    Study/역사 2020. 5. 1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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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에 이어서 조선 초기를 포스팅해볼 거예요
    바로 조선건국의 일등공신인 무학대사와 정도전에 대해서 말이죠.
    태조 이성계부터시작된 조선 왕의 가계도도 쭈욱 써나가 볼 건데 우선은 2대 임금 정종과 3대 태종까지!
    누가 새로운 나라를 이끌건지 한번 지켜보시죠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던 정도전과 신흥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바로 새로운 왕조를 연 주인공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경상도 봉화 땅에서 태어난 정도전은 어머니에게 노비의 피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주와 학문이 뛰어났는데도 오랫동안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때부터 정도전은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농민들의 생활을 이해하면서, 잘못된 점들을 바꿔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도전은 우선 권세 있는 집안과 절에서 제멋대로 농민들을 부리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산업을 나라에서 강력하게 통제하면 개인의 이익만을 챙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 농민들이 편안히 농사지을 수 있도록 보호하여, 자기 땅을 가진 농민들을 기반으로 나라의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정도전은 뛰어난 재상이 왕을 도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경국전〉, 〈경제 육전>과 같은 법전을 펴내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리고 한양(서울)을 건설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정도전의 의견에 모든 사람이 전부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태조의 아들 이방원은, 나라의 중심은 재상이 아니라 왕과 왕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도전 못지않게 조선을 세우는 데 공이 컸던 이방원은 정도전에 밀려 개국 공신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정도전은 이방원의 이복 동생인 방석을 세자로 앉혀 자신의 권력을 확실히 하려고 했습니다. 
    이제 두 세력 사이의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재상이 중심이 되어 조선의 역사를 이끌어 보려던 정도전 
    도 끝내 이방원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강력한 왕권을 세우기 위해, 세력이 커진 개국 공신들을 누르는 아들 방원의 생각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방원이 정권을 잡기 위해 형제들과 싸우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권력 싸움이 자식들끼리의 다툼으로 이어지자 태조는 고뇌에 빠졌습니다. 마침내 태조는 둘째 아들 방과에게 임금 자리를 넘겨 주고 물러났는데, 방과가 바로 2대 임금인 정종입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방원은 형 정종에 이어 제3대 임금 태종이 되었습니다.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태조는 이를 못마땅히 여겨 고향인 함흥으로 갔습니다. 태종은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려고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돌아오기를 간청했지만, 태조는 오히려 찾아온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죽 었다고 합니다. 함흥차사라는 말은 태종의 명을 받고 함흥에 간 사람들이 노여움이 풀리지 않은 태조에게 목숨을 잃어 돌아오지 못했다는 데 
    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태조는 무학 대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결국 태종과 화해했습니다. 
    태종과 정도전의 싸움은, 나라를 여는 데 공이 많았던 신하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이끌 것인가 아니면 왕실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이끌 것인가 하는 다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도 왕과 신하가 서로 힘의 균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정도전이 죽은 뒤에도 그가 계획했던 개혁은 되었습니다. 새로운 조선의 왕들은 자기 땅을 가진 농민들을 나라 살림의 근본으로 삼고 농민 들을 보호하는 데 힘썼습니다. 

     


    왕의 이름 끝에 붙는 조나 종
    ex)태조 이성계, 정종, 세종..

    조선 시대에는 태조에서 순종까지 27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왕을 임금, 군주, 상감마마, 나랏님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데, 27명의 왕에게는 각자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태조, 세종 등의 이름은 왕이 죽은 뒤에 짓는 이름인 묘호입니다. 죽은 왕과 왕비의 업적이나 특성에 따라 새로운 이름인 묘호를 정하고, 나무로 만든 패에 적어서 종묘에 모셨습니다. 이름 끝에 붙는 조와 종의 기준이 특별히 나누어진 것은 아니지만 나라를 새롭게 연 왕에게는 일반적으로 조를 붙였습니다. 또한 공적이 많은 왕에게도 조를 붙였고, 학문이나 예술 
    에 공이 큰 왕에게는 종을 붙였다고 합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태조라는 묘호를 받았습니다. 
    한편 왕이었다가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은 군을 붙여서 그 지위를 낮게 평가했습니다.



    오늘은 조선 초기부분을 한번 적어봤는데요
    건국직 후(1392년) 부터 약 1400년까지의 정치상을 위주로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더욱더 유익한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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